탐인(探人) 정운현의 '역사와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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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15권 완간 기념 시오노 나나미 인터뷰 기사(문화일보, 2006. 12. 13)

잘라둔 기사 더미에서 기사 하나를 찾느라고 오전 시간을 허비했다.
혹자는 그래서 정리, 가공되지 않은 자료는 ‘쓰레기 더미’라고 했던가.
그러나 그 때 잘라라도 두었기에 시간은 걸렸을지언정 찾아낼 수 있었다.

오늘 내가 찾은 기사는 <문화일보> 2006년 12월 19일자에 실린 것으로,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로마인 이야기’의 작가 시오노 나나미(鹽野七生, 71)가 최종 15권 출간을 맞아 기자회견을 한 내용이었다. 무려 15년에 걸친 집필 기간에 시오노는 매년 1권씩 펴낸 셈이다. 시오노는 고교 시절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를 읽고 지중해 세계에 깊이 매료돼 1963년 이탈리아로 건너가 그곳에서 30년간 독학하며 로마사(史)를 파고들었다. 그리고는 이를 바탕으로 15년에 걸쳐 ‘로마인 이야기’를 집필했다. 이 기간 동안 시오노는 여름휴가 한번 가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전문 역사학자가 아니다. 오로지 관심 분야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집념이 이런 대작을 낳게 한 것이다.

거의 한 면을 털어 비중 있게 다룬 기사에서 내가 주목한 대목은 바로 이것이다.

로마인 이야기’의 가장 큰 특징은 ‘역사서도 재밌을 수 있구나’는 생각을 독자들에게 깊이 각인시켰다는 점이다. 역사서의 품격을 잃지 않으면서도 독자들이 흥미진진하게 2000년 전의 타국 역사에 빠져들 수 있게 만든 힘은 ‘로마인 이야기’가 갖고 있는 매우 큰 장점 중 하나일 것이다.

지난 16일 일본 도쿄(東京) 상공인회의소에서 한국 취재단과 기자회견을 한 시오노는 이와 관련, “역사란 여러 가지 사람이 행한 여러 가지 일을 기록한 것이 아니냐, 잘 읽어 내면 당연히 재미있을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역사학자들이 쓴 역사서가 일반인들에게 재미없게 느껴지는 것은 역사를 재미있다고 말하면 학자로서의 권위가 떨어지니까 아예 재밌게 보려는 시도 자체를 무시하기 때문”이라는 게 시오노의 시각이다”

내가 오늘 ‘쓰레기 더미’를 뒤져가며 이 기사를 찾은 까닭은 오늘자 <한겨레>에 실린 민속학자 주강현씨가 ‘해양학자’로 변신한 사연을 다룬 인터뷰 기사를 읽고서였다. 주강현씨는 그간 재미없는 우리의 민속 문화를 쉽고 재미있는 필치로 대중화 작업을 펼친 인물로 유명하다. 그런 그가 최근 모 국립대학 석좌교수가 됐는데, 분야는 종래의 전공분야인 민속이 아니라 해양 분야라는 것이다. 인터뷰 기사에서 내 눈이 머문 곳은 이런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다음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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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학자에서 해양학자로 변신한 주강현 박사

- 책도 많이 쓰고 활동도 활발한데 교수 임용이 안 된 이유가 뭐였습니까?
“지적 풍토가 거지같은 나라죠. 학계는 자기 밥그릇 깨는 걸 싫어합니다. 저는 처음부터 복합학문을 했습니다. 국문학과 사학과를 넘나들었죠. 그래서 제 활동에 대해 디스카운트를 많이 당했습니다. 건조하고 딱딱한 것은 학문이고 현장에서 발로 뛰어 만든 저술은 학문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 자들과 싸우느라고 게릴라 생활을 많이 했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강사가 노예 같은 처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더는 그런 일이 없어야 합니다”

이 대목을 읽자마자 나는 시오노 나나미 인터뷰 기사를 떠올렸다. 그리고는 시오노 나나미 인터뷰 기사에 내가 붙여두었던 딱지도 떠올렸다. 강준만, 이이화 두 사람이었다. 이들 역시 위 두 사람과 맥을 같이하는 발언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두 사람의 기사를 <오마이뉴스>를 검색해서 수소문했다. 강준만, 이이화 두 사람의 인터뷰는 모두 내가 맡았었다.

우선 이이화 선생은 지난 2004년 5월 <한국사 이야기> 22권 완간을 맞아 인터뷰한 것 이었고, 강준만 교수는 그 해 10월 <한국현대사 산책> 15권 완간을 계기로 한 인터뷰 였다. 우선 두 사람의 인터뷰 기사 중 내가 주목했던 부분을 살펴보자. 먼저 이이화 선생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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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와 인터뷰하는 이이화 선생

- 그간 재야에서 저술, 강연, 답사 등 활발한 활동을 해오셨는데, 이번에 완간한 <한국사 이야기>에 대한 강단 사학계의 평가는 어떤가?
"
흔히 딱딱하기 쉬운 역사를 대중화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들도 있다고 들었다. 젊어서 문학활동을 했기 때문에 대체로 내 책의 문체가 쉽고 문장이 대중적이라는 평을 듣는 편이다. 이는 칭찬이라고 본다.

그러나 비판도 많다. 대개 세 가지 부류가 있다. 첫째는 '역사 엄숙주의자'들이다. 그 사람들은 형식뿐만 아니라 내용에서도 반대하고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둘째 민중사적인 접근과 계급적인 문제에 대해 내가 과감하게 다루고 수용하니까, 나를 이데올로기적으로 비판한다. 어느 대학에선 내 책을 인용하면 학위를 안 준다는 말도 들은 바 있다. 셋째 내가 학위도 없고 정통도 아니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사료에 대한 나의 분명한 관점 등에 대해서 비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 (오마이뉴스, 2004. 5. 13, [인터뷰] <한국사 이야기> 22권 완간한 역사학자 이이화씨)

다음은 강준만 교수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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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교수가 펴낸 <한국현대사 산책> 시리즈

- 이번 기획물의 서명이 '한국현대사 산책'으로 돼 있습니다. 반세기동안의 우리 현대사를 '산책'하면서 무엇을 구경하였고, 또 무엇을 느끼셨는지 그 인상기를 간단히 소개해 주십시오.
"요컨대, 제 책은 넓은 의미의 한국 언론사라고 해도 무방하다는 거지요. '산책'을 하면서 사실 제가 많은 걸 배웠습니다. 그간 저는 나름대로 한국현대사를 꽤 안다고 자부해 왔었는데, 이번 산책을 하면서 제가 잘 몰랐던 게 너무 많았다는 걸 절감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산책을 하면서 내내 한 가지 생각했던 건 일반인들이 접근하긴 어렵지만 이 분야에 매우 유익하고 재미있는 학술 서적과 논문들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저자들 중 몇 분이라도 ‘현대사 대중화’ 작업에 나서준다면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중의 하나인 ‘역사의 빈혈’ 현상을 꽤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지요.
베스트셀러가 된 한홍구 교수의 '대한민국사' 같은 좋은 책들이 다양한 주제와 관점으로 좀 더 많이 출간된다면 한국사회의 현안을 다루는 논쟁의 질적 수준도 높아지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잘 아시겠지만, 역사학자들은 결코 ‘대중화’ 작업에 나서지 않을 겁니다. 그거 해봐야 학계 내부에서 좋은 소리 듣기 힘들다는 것 잘 아시잖습니까?"
- (오마이뉴스, 2004. 10. 13, [이메일 인터뷰] <한국현대사 산책> 15권 완간한 강준만 교수)

내가 말하고자 하는 취지는 대충 드러났다고 본다. 골자는 역사학자들이 역사의 대중화에 소극적일뿐더러 대중적 글쓰기는 자신들의 품위를 훼손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도외시한다는 얘기다. 특히 이런 저작물에 대해 역사학계 내부에서 곱지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풍토가 더욱 문제라는 것이다. 이는 이이화 선생의 지적처럼 다분히 역사학자들의 ‘엄숙주의’에서 기인한 바 크다고 할 수 있다.

역사는 역사학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래서 시오노 나나미처럼 학자가 아닌 사람들도 역사물을 손댈 수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미 역사를 전공한 사람들이 논문이나 저서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즉 눈높이를 좀 더 낮춰 전문지식을 대중들과 호흡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성과물을 엮어 낸다면 참으로 효과적이고 또 유익할 것 아닌가.

몇 년전 역사학계에서 ‘식민지 근대화론’이 한창 논쟁이 됐을 때의 일이다. 안병직 씨 문하의 일부 경제사학자들이 ‘식민지 근대화론’, 즉 일제지배가 한국의 경제성장에 도움이 됐다는 주장을 온갖 곳에서 펴고 있길래 내 또래의 한 역사학과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본격 대응을 좀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그들과 맞서면 품위가 떨어진다”고 해서 놀란 적이 있다.

오늘 주강현 박사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서 문득 주위의 질시와 무시 속에서도 대중들과 호흡해온 지식인들의 외로운 투쟁이 빛나 보였다. 이런 지식인들이 더욱 늘어나길 기대해 본다. 시오노 나나미, 이이화, 강준만, 주강현. 이들의 이름을 다시 한번 더 기억해두고 싶다.

    Posted by 정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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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밌는 역사서를 안쓰는게 아니라 못쓰는거 아닐까요? 역사를 재밌게 쓴다는건 참 어려운일일테니까 말이죠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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